★ 사림, 사화, 붕당의 중요성 / 사람이 추구하는 이상정책을 알아본다 ★
1) ‘사림’의 의미
A. 사림(士林): 비정부 지식인
※ 훈구(勳舊) : 오랫동안 궁중에서 공적을 쌓은 사람(창시자)
나. 사림파의 특징 : 성리학의 이상실현에 대한 정치적 주장 – 왕도정치, 농촌자치, 민생안정 강조
※ 조광조의 개혁정책
– 신중한 집행 : 왕도의 정치실현을 위한 신인재 모집 및 사림파 영입
– 향약의 유통 : 생활 속 유교적 가치관
– 조공 제도 폐해 개편, 소학문 폐지(허위 공과 과목명 삭제) 등
| 훈구파(15세기) | 사림파(16세기 이후) | |
| 장학금 | 대통령 중심(강경파, 관료) | 한문 중심(온건파, 사학파) |
| 생각 | 성리학 옆에 포용하다 | 성차별 제외 |
| 성향 | 부귀와 군사력 추구 | 충성심, 도덕적 숭배 |
| 정치 체제 | 중앙 집중화를 위한 노력(왕권 강조) | 지방분권 주장(신정, 농촌자치 강조) |
| 민족의식 | 독립적인 | 존경하는 |
| 역사 박물관 | 단군 강조 | 취재진에 집중 |
| 정치적 사고 | 패권정치(힘에 의한 정치) 인정 | 왕실 정치를 하다 |
| 기간 | 15세기 민족문화의 주역 | 16세기 이후 사상의 지배 |
2) 사림의 정치적 성장
가. 훈구파의 대지 소유 및 정치적 비리 비판
나. 사화(선비 부상) : 성장하는 사림파에 대한 훈구의 공격
– 사림 4회 중대피해(연산군 2회, 영종 1회, 중종 1회)
– 사화무오, 사화갑자, 사화을사, 사화기묘
다. 서원의 건립과 향약의 보급을 통한 농촌사회의 거버넌스 확보 중앙정치권으로의 확고한 부상 16세기 중반 이후 정치의 주도권 확보
– 향약 : 유교와 결합된 유교적 덕목을 가르친다.
| 기간 | 사건의 시작 | 가해자 | 피해면 | |
| 무오사화 | 1498년(연산포 4호) | 사초 추모식 | 헝구파 | 사림파 |
| 급사 | 1505(연산포10) | 윤비 폐지 문제 | 왕실 측근 | 사림, 훈구파 |
| 이상한 죽음 | 1519(중종 14) | 조광조의 횡포 | 헝구파 | 사림파 |
| 을사사화 | 1545년(명종 원년) | 싸움 | 모계 왕실 친척 | 사림파 |
3) 분당의 모습
가. 붕당(친척집단) : 공동주장을 바탕으로 정치활동을 전개하는 관료집단(현 정당과 유사)
나. 분당의 형성 : 왕권 약화(신권 강화), 양반 세력의 분열 선조 때 관리들은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었다.
다. 분당의 의미
– 초기 정치적 이견을 바탕으로 정치 부흥에 기여
– 점차 국익보다 인맥(학연, 가족, 지역)을 우선시하여 사회발전 저해
라. 분당의 특징 : 정치세력 간의 비판과 통제를 통한 정치
4) 분당정책의 전개
| 선조 | 광해군 | 인조 | 효종 | 현종 | 숙종 |
| 도당 | 북쪽 남쪽 | 남인북탐사 비판 | 예송 논란 | ||
| 서인 | 인조반정 | 서인 – 북방탐험 | 노론/소론 |
※ 분당 : 선조 때 처음 형성 →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어짐
인조대 분당정책의 수립 : 서인과 남인의 공존, 공론에 의한 상호통제와 균형에 의한 정치적 운용
예송 논란으로 달라지기 시작
※ 예송 논란
– 1. 예손논쟁 : 1659년(효종후계), 인조왕후 계비(효종의 계모) 효종 사후 복식논란, 서인1년설 vs. 상황 리드
– 2차 예손논쟁 : 1674년(효종, 인선왕후, 장씨 흥망성쇠), 당시 복식논란도 서인이 남성에 대한 대공설(9개월) 주장
5) 조선초기 대외관계
가. 명칭 : 4대 정책, 사절파견(정치목적, 문화수입, 상품교역) 나.
나. 여진: 교린정책(유화와 강경 모두)
– 유화조치 : 탈북촉진, 북평관(조공무역), 무역국(국경무역)
– 강경정치 : 4개 집단 6진영, 시민정치(살아가기 위한 강제이주), 지방자치제 활용(공무원 파견 없이 자기 땅 다스림)
C.일본
– 회유: 제한된 하위 무역 허용(3개 개항, 류큐, 샹, 지방 등)
– 강경: 쓰시마 정벌(세종, 이종무)


